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6 군사정변 (문단 편집) == 기타 == *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북쪽의 [[경기도]] [[김포시]] 최전방을 방어하는 임무를 지닌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제1여단[* 현재는 [[해병대 제2사단]]] 병력 1,500명을 쿠데타를 위해 [[서울특별시|서울]]로 빼돌렸다. 이렇게 전방 부대를 빼돌려 쿠데타에 동원하는 행위는 이후 [[12.12 군사반란]] 때 [[제9보병사단]] 29연대에 의해 다시 일어난다. * [[박정희]]가 한강다리를 건널 때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박정희에게 이것저것 보고를 하러 간 전속부관의 말에 따르면 이미 그의 몸에서 술 냄새가 상당히 풍겼다고 한다.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5.16 군사정변 관련 에피소드를 보면, 박정희 외 1명이 쿠테타가 실패했다고 스스로 자포자기하여 대포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정변 지휘부들은 [[박정희]]가 안 보인다며 당황하다가 술에 취한 듯한 박정희를 부하들이 찾아서 데려오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5.16 정변 당일 정명환을 필두로 한 진압군을 박정희가 직접 말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술을 한두 잔 했을 수는 있어도 몇몇 증언처럼 정말 '''자포자기 상태로 술에 만취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박정희]]가 만취했다고 회고한 박치옥 같은 경우는 초기에 정변에 가담했다가 나중에 반혁명 혐의로 숙청된 인물이라서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한두 잔 정도는 아니고 술 냄새가 풍길 정도로 많은 술을 마셨더라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 게, 박정희는 술이 상당히 셌다. 훗날 박정희는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과 만난 자리에서 [[육영수]] 여사와 태국 외무장관이 기겁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셔서 좌중의 불안한 시선을 받았지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연설까지 마친 일화가 있다. [[김종필]]은 회고록에서 명백히 박정희가 쿠데타 당시 술에 취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물론 이 당시 김종필은 박정희 근처에 없었기 때문에 근거로는 의미가 없다. 해당 시점에서 김종필은 이미 이전에 강제전역 당한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병력도 무기도 직급도 없어서 쿠데타 당시 박정희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대신 혁명공약 인쇄한다고 인쇄공들을 재촉하고 있었으며, 이건 김종필 스스로 인정한 내용이다.[* 김종필은 자신이 5.16을 계획했으며, 박정희에게 실행을 제안했다고 해서 5.16의 주역을 자처하지만, 실행단계에서는 참여하진 않았다는 것도 인정했다.] * [[차지철]]과 [[전두환]]은 이 쿠데타에 [[대위]] 계급으로 가담했으며 쿠데타가 성공하는 바람에 [[소령]]은 거의 생략하다시피할 정도로 짧게 진급한 후 바로 [[중령]]으로 진급했다. 차지철은 그렇게 중령으로 제대한 후 국회의원이 된 반면 전두환은 계속 군대에 남아 [[소장(계급)|소장]]까지 진급한 이후 [[12.12 군사반란|박정희의 이 짓과 똑같은 짓]]을 저질러 박정희와 똑같이 권좌에 오르게 된다.[* 전두환과 차지철이 말년 대위라고 본문에 기술 되어있는 것은 약간 어폐가 있다. 최갑석 장군에 따르면 1960년대 당시의 진급 적체때에 8년차 중위, 14년차 대위가 속출했다고하고, 정작 전두환의 출신인 육사11기는 소위 3개월, 중위 1년, 대위 2~3년 근무후 상위 계급으로 초고속 진급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전두환의 경우 1958년 대위로 진급하고 1961년 군사정변 당시까지 대위였으므로 다른 육사11기 동기생보다는 조금 늦어졌다고 볼수 있을지 몰라도 말년 대위라고 볼 수는 없다. 차지철의 경우는 1954년 임관이지만 육사 출신도 아니므로 군사정변 당시 임관 8년차 대위로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 다만, 차지철, 전두환 둘다 소령으로의 진급은 1년만에 이루어졌다.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041005/1/BBSMSTR_000000010257/view.do|현지 임과 출신 최갑석 장군의 회고록]] ] * 훗날 [[박정희]]의 심복이자, [[10.26 사건|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는 5.16 정변에 가담하지 않았다. 당시 김재규는 준장 계급으로 국방부 총무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5.16 정변 직후 반혁명 분자로 몰렸으나 박정희의 보증으로 풀려났다. 김재규는 군대의 정치 중립을 매우 강조한 [[이종찬]]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고 그 영향을 받아서 쿠데타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김구]]의 아들 [[김신]]이 정변 당시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이었고 정변에 참여했다. * 이 사건 발생 3일 전인 [[1961년]] [[5월 13일]]에 [[재보궐선거]]가 열렸는데 이때 당선된 의원들은 취임한 지 '''12시간 만에''' 국회가 해산되어 의원 자격이 박탈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중엔 4번의 좌절[* 세 번 낙선, 한 번은 방해 공작으로 등록도 하지 못했다.] 끝에 [[강원도]] [[인제군]]에서 당선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대중]]이었다. 이것도 어찌 보면 악연이다. *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의 [[정치깡패]]들과 그들의 조력자였던 [[곽영주]] 등의 친 자유당 경찰 세력은 복역 중 5.16 정변 소식을 듣고, "아싸! 민주정권이 물러났으니 이제는 다시 우리 세상이다!"라며 좋아서 쾌재를 부르며 날뛰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불과 4일 후에 자신들이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읍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울 시내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래는 육군 [[육군특수전사령부|공수특전단]] 대원들에게 끌려 다니며 공개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하는 [[정치깡패]] 두목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를 포함한 동대문파의 화랑동지회. 결국, [[갑종장교]] 출신에 대학 나온 인재라고 살려준 [[유지광]]을 제외하고 모두 처형된다. 자세한 내용은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그리고 [[혁명재판]] 문서를 참고.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jjlee.jpg|width=100%]]}}} || || {{{#fff ''' 이후 이정재의 모습 '''}}} || * 본래 5.16을 미화하는 측에서 '''구국의 결단'''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3454076&cpage=1&mbsW=&select=&opt=&keyword=|링크]] 과정은 쿠데타지만, 결과를 보면 혁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당시 용어의 사용이 일종의 [[밈]]화 되면서 구국의 결단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확대되었고, 굳이 5.16이 아니더라도 특정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정치인의 판단이 엇갈리는 결정을 구국의 결단으로 표현하는 용례가 늘어나고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30462|링크]] * 대표적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도 [[썰전]]에서 5.16은 [[쿠데타]]라고 명확하게 말했다. 심지어 자기 군 복무 시절에 터진 [[12.12 군사반란]] 당시엔 '군인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논문을 쓰며 군인 신분임에도 12.12는 쿠데타라고 대놓고 말했다가 치도곤을 치를 뻔하기도 했다고. 사실 보수 인사 중에서도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은 5.16을 쿠데타라고 비교적 쉽사리 인정하는 반면, 권위주의 보수 계열에선 쿠데타나 군사정변이란 표현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후술된 [[김현웅]] [[법무부장관]] 말처럼 교과서에는 군사정변이라고 기술되어있다. * 묘하게도 51년 7개월 후 열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51.55%[* 반올림하면 51.6%이다.]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 [[MBC]] 드라마 [[왕초]]에서는 마지막 회에 악역들이 일제히 몰락하는 사건으로 비춰진다. 이 정변을 통해 적폐를 척결한다는 모습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졌다. 김춘삼과 아는 사이였던 어리버리한 중대장은 혁명재판부의 검찰로 출세했다고 좋아라 한다. 나중에 케이블에서 재방송을 할 때는 서울 시내에 진입한 계엄군이 [[친일반민족행위자]] 경찰들과 이정재 등을 잡아가는 장면을 삭제해서 방영했다. 또한 [[MBC|동 사의]] 드라마 [[영웅시대]]에서도 39화에 5.16 군사정변을 비춰지는데 군사혁명위원회가 서울을 장악하는 과정 그리고 [[정주영|두]] [[이병철|기업인]]을 포함한 부정축재로 지목된 기업인, 정치인들을 조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